언론보도

[인도-발리우르] 열정적이던 그 곳에서의 추억
등록 : 도우미, 등록일 : 2008년 7월 3일, 열람 : 16,878

내일신문 2007년 7월 18일~7월 22일

지난해 7월 코피온에서 장기 봉사단으로 선발돼 인도로 파견된다고 하자 주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인도 방문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인도에 갔을 때의 인상은 길거리에 끝없이 이어진 천막촌과 구걸하는 아이들이 가득한 모습이었고, 이는 나에게 무척 충격적이었다. 그때 결심했다. 훗날 이 사람들을 꼭 돕겠다고. 그리고 몇 해 전 대학 새내기가 되어 두 번째로 인도를 찾았을 때 그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리고 22살이 되던 때, 난 장기봉사 지역으로 주저 없이 인도를 선택했다.

 

● 지난해 8월부터 지난 2월까지 6개월 동안 봉사활동을 한 곳은 인도의 땅 끝 마을 깐야꾸마리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발리우르라는 곳이었다. 지도에는 나와 있지도 않은 이 작은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곤 했다. 또 교복 입은 여학생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도망가기도 했다. 이렇게 순박하고 티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 매연과 장사꾼들로 북적이는 북인도의 관광지와는 다른 인도의 참 모습이었다.

 

● 대부분 인도라고 하면 매콤한 카레와 인사말 ‘나마스떼’, 눈부시게 흰 대리석으로 지어진 타지마할 정도를 떠올린다. 하지만 발리우르가 속해있는 남인도, 특히 타밀나두 주는 우리가 알고있는 인도와 달리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타밀사람들은 카레보다 우리나라의 국과 비슷한 삼바를 즐겨먹는다. 또 쌀 농업이 주를 이루고, 한여름에는 50도를 웃도는 더위 때문에 화덕에 굽는 밀가루 빵 ‘난’ 대신 쌀 반죽을 해 팬케익처럼 만든 바삭바삭한 ‘도사’나 찐빵과 비슷한 ‘이들리’를 주식으로 한다. 도사와 이들리에 삼바 또는 코코넛 소스인 차트니를 찍어 먹으면 기막힌 식사가 된다. 또 타밀나두 주는 힌두어가 아닌 타밀어를 쓰는데, 이게 참 재밌다. 우리말과 같이 엄마를 ‘엄마’라 부르고 아빠를 ‘아빠’라 부르기 때문에 처음 들으면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타밀문화는 건축양식에서도 독특함을 자랑하는데, 이슬람 색체가 짙은 북인도와 달리 형형색색의 돌조각으로 이뤄진 힌두사원들은 타밀나두를 비롯한 남인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 내가 활동했던 기관은 Ramu Ammal Muthiya Educational Trust(RAMET)라는 NGO로서, 이 지역의 가난하고 카스트가 낮은 학생들을 위해 싼 학비로 호텔교육을 제공하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이곳을 졸업하면 바로 호텔에서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겐 회화실력이 절실했다. 그래서 주로 호텔, 레스토랑에서 자주 쓰는 표현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고, 고맙게도 학생들은 잘 들어줬다. 주중에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금요일엔 RAMET 산하의 보육원에서 활동했다. 처음 보육원에 들어섰을 땐, 열악한 시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허름한 건물 안에 4~6세가량의 아이들이 시멘트 바닥에 앉아 놀고 있었다. 인도에는 예체능 과목이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되지 않아 아이들은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도형, 색에 대한 인지가 떨어지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이 참 많이 아팠다.

 

● 발리우르에서의 봉사활동이 끝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하루는 나와 친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사실 그 아이는 나보다 5살이나 많았지만 평소에는 다른 학생과 똑같이 대해왔다. 그러다 그날은 장난삼아 ‘아난(타밀어로 오빠라는 뜻)’이라고 불렀더니, 그 말이 듣기 좋았는지 한참을 껄껄 웃었다. 그러더니 “나는 보람 맴(ma’am)보다 나이가 많지만, 맴은 언제나 내 선생님이에요. 나도 평생 맴의 학생이고요”라고 말해 한쪽 가슴이 찡해왔다.

 

 

● 지난 6개월 동안 나는 아이들의 선생님이었지만,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은 콩알만큼의 지식밖에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 훨씬 많았다. 봉사활동이 그들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닌, 그들과 ‘나누기 위한 것’이란 사실을 하루에 몇 번이고 깨닫기도 했다. 내가 워낙 인도를 좋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발리우르에 머무는 동안 난 한 번도 인도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들과 함께 먹고 웃고 이야기 할 때는 인도인, 한국인이란 경계 없이 그저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벌써 4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들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다시 발리우르로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해외 봉사활동을 주저하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당당히 말해주고 싶다. 세계를 향해 날아라! 열정이 없는 젊음은 쓰레기에 지나지 않으므로. Kopion 15기 윤보람 (상명대 영어교육 04)

 

코피온 페이스북 바로가기 코피온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코피온 카카오톡 바로가기 코피온 유튜브 바로가기 코피온 해피빈 바로가기 코피온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