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인도 오지 해외봉사자들의 생활 ⑥ – 5기 인도 김동훈
등록 : 도우미, 등록일 : 2008년 7월 3일, 열람 : 14,526

 


 


제민일보 · 불교정보센터 – KOPION 5기 인도 JTS 김동훈


 


 


 해외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이 가장 먼저 저지르면서도 제일 고치기 힘든 점이 있다면 외국에 가서도 문화적이거나 현실적인 입장 차이를 이해 못하고 여전히 한국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음식이나 기후 같은 것은 신체적 적응의 문제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가는 반면에, 우리 정신 뿌리 깊이 박혀있는 한국적인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현지의 방식에 맞춰나가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인도 JTS의 지바카 병원에서 처음 일하게 되었을 때이다. 필자는 결핵환자들을 다루게 되었는데, 병원에서 가까운 마을에 사는 환자들에게는 매번 약 먹는 것을 감독하기 위해서 매일 병원에 들리라고 요청했다. 내 결핵환자들을 볼 때마다 “내일 아침 9시까지 병원에 다시 와서 약 타가세요!” 라고 강조에 강조를 했다. 그러나 시간을 지키는 환자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시간보다 일찍 오는 환자에서부터 그날 오후 늦게 오는 환자까지 약 받으러 오는 시간이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면 속이 안 터질 수 없다. 짜증은 팍팍 나고. 그렇지 않아도 더워 죽겠는데 성질까지 팍팍 올리고… 그래서 악을 써가면서 매번 시간을 강조해보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시간 안 지키기는 마찬가지였다. ‘인디안 타임’ 이 ‘코리안 타임’보다 더 하다는 소리는 인도 오기 전부터 들었지만 자기 목숨달린 일인데도 이 정도일 줄이야 몰랐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정을 이해할 만도 했다. 돈이 없어 하루 세끼도 먹지 못하는 가난한 전정각산 사람들에게 시계가 있을리 만무했던 것이다. 집에 있는 거라곤 냄비 몇 개가 전부인 집에 벽걸이 시계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개인이 차는 손목시계는 사치 중의 사치이다. 이렇게 시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필자는 매번 아침 9시까지 시간을 지키라고 했으니 환자들은 오죽 답답했겠으랴. 그저 ‘아침밥 먹고 오세요’ 내지 ‘점심 밥 먹기 전에 오세요’라고 말하는 게 옳았다. 상대방 처지에 대한 이해가 덜할 때 생기는 실수 아닌 실수이다. 거기다 짜증까지 냈으니 환자들이 말을 안 들어서 그런 게 아니고 필자의 무지가 만들어낸 짜증인 것이다.


 


 그러나 이후로도 필자는 여전히 환자들에게 ‘몇 시까지 병원에 오세요’라고 말했다. 환자들도 예전보다는 나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따지고 보면 인도사회전체의 분위기도 시간에 맞게 사는 바쁘게 사는 방식을 이 오지사람들에게도 강요해가고 있었고, 본인들도 그것을 대세로 여기는 듯했다. 농촌적인 시간관념은 사라지고 도시적인 시간관념이 자리잡으려는 것이었다. 이후로 논길을 가로질러 마을에 들어갈 때쯤 마을사람들이 무언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대충 이런 얘기였다. “지금 몇 시예요?” JTS를 만든 법륜스님이 그 곳에 들어와 마을사람들과 같이 살며 학교를 지을 때도 시간과 관계된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을 모아 학교공사를 시작하는데 매일 아침 8시부터 공사시작이었다. 그런데 아침 7시만 되도 마을인부들이 죄다 모인다는 것이다. 별로 부지런하지도 않은 이 사람들이 왜 이러는가 알아보았더니만, 그 시간에 집에 있어봤자 할 일이 없기 때문이란다. 새벽부터 일어나 집에서 노느니 그나마 구한 일터로 빨리 출근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아침들은 못 먹고 나온다. 그럴 돈이 없으니까. 집에 할 일이 없다고 출근을 일찍 하는 사람들. 한국사람들이 보기엔 좀 바보 같은 면이 있어 보이지 않을까.


 


 인도 사람들이 그 곳에서 일하는 한국사람들에게 가장 큰 불만은 한국사람들은 툭하면 짜증부터 낸다는 것이다. 인도 사람들 입장에서는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왜 그렇게 억지로 하려고 하는지 왜 그렇게 집요하게 달라붙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고, 일이 제대로 안되면 안 되는구나 싶어하며 그냥 넘어가는 게 아니라 본인과 상대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짜증부터 내니 한국인들은 참 웃기는 족속이라고 생각할 만도 하다. 어느 사이에서부터인가 우리 몸에 배어 있는 습속들. 각박하게 살아오고 조급하게 살아오고 경직되게 살아온 한국에서의 습관들이 한국에 살 때는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고 오히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긴장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다른 문화 다른 사람들 속에서 겪은 바로 보면 그런 것들도 결국 상대적인 것일 뿐이라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우리 식의 삶에 대한 반성을 저절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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