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연해주에서 보낸 한달
등록 : 도우미, 등록일 : 2008년 7월 3일, 열람 : 15,721

 


 러시아 밤하늘의 별을 본지도 어느덧 한달 반이 되어간다. 내가 사는 미하일로프카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다. 향수병이 채 가시지 않은 나에게는 이 곳 밤하늘의 별이 나의 향수병을 달래준다 고나 할까?
내가 머무는 곳은 북적 되는 도시와는 완전히 거리가 먼 마을이다. 고려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한국의 농촌지역과 아주 흡사하다. 마을 곳곳에는 비닐하우스 설치가 한창이고 그림책에서나 보았던 집집의 굴뚝에서는 아침저녁으로 뽀얀 연기가 퐁퐁 하늘로 흩날린다.


 상점을 뜻하는 동네 ‘마가진’ 에서는 거의 매일 들르다시피 하는 우리들을 반갑게는 아니더라도 무안하지는 않을 정도로 맞아준다. 못 알아들을 것을 감안하여 계산기로 얼마가 나왔는지 거스름돈은 지폐 한장한장 꺼내 정확한 계산임을 확인시켜 준다.


 처음에는 ‘이거, 저거’ 해가면서 손가락질로 간신히 물건을 산 것에 비하면 요즘에는 물건의 단어를 조금씩을 섞어가면서 물건을 사는 정도??
하지만 아직도 상당히 미숙한 관계로 마가진에서 사고를 친 적이 있었다. 한국과 같이 내가 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구경하고 선택할 수 있는 여유는 이곳에는 없다. 계산대 앞이 딱 막혀 있어서 판매원에게 이거 달라 저거 달라 이야기를 해야 하나씩 꺼내주는, 우리에게는 아주 낯설고 불편한 시스템이다. 말도 통하지 않은 관계로 우리는 나름대로 초콜릿이 발라져 있다고 판단되는 빵을 달라고 했다.


 이 역시 손짓 발짓으로 겨우 샀는데 상점직원은 우리에게 그 빵을 일주일은 거뜬히 먹을 정도의 양을 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10개 달라고 한 건데 그녀는 우리가 10킬로그램을 달라는 소린 줄 안 것이었다. 엎친대 덮친 격으로 그것은 빵도 아닌 잼이 들어있는 매우 단 초콜릿이었다. 기후가 매우 추운 관계로 단 것을 좋아하는 러시아사람들이라고 해도 그건 너무나도 단 초콜릿이었다.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했는데 사무실의 러시아인 ‘아냐’를 주니 너무나도 맛있다며 다 먹어주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의 모습은 사뭇 달라졌다.
단 것을 좋아하는 편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현지 적응력에 가속도가 붙은 지금은 초콜릿 킬러가 되었고 하루라도 고기를 안 먹으면 뭔가 덜 먹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니 한 달 만에 내가 살을 찌는 것에는 더 이상 변명거리가 없어졌다. 그러나 타고난 생활 적응력에도 불구하고 타지에서의 어려움은 있었다.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압박.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나눠보았다. 우선 신체적 고통은 두통이 생긴 것이다. 바로 이들이 쓰는 언어의 정신 없음이 원인이다. 하루빨리 이곳 언어를 배워야 함이 당연지사지만 나는 이들의 언어가 너무나도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다.
국적회복 신청을 위한 많은 고려인들이 오고가고 1층의 여행사직원들, 고려신문식구들이 하루에도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달락 거린다.


 러시아어를 쓰는 상담 손님들 혹은 사무실 지인들이 오실 때는 나는 의례 귀를 틀어막을 이어폰을 꺼낸다. 어쩔 땐 저 사람들이 싸우는 건지 하고 오해하기도 한다. 이제는 익숙해 질 때도 됐는데 이상하게 그들의 바쁘기 만한 언어는 아직까지도 곤욕이다. 사무실에서 어머니라 부르는 옐라세예브나 어머니도 인정하신다. 러시아어는 상당히 바쁜 언어라고.
비록 말을 못하지만 눈치는 정말 눈에 띄게 늘었다. 눈칫밥 한달? 이라고 해야 할까??
눈빛으로 뭘 원하는지 100이면 80은 맞추니 나름대로 눈치의 경지에 오른 듯싶다.


 마가진에 한번 가려면 큰 맘 먹고 가야만 하지만, 길가다가 사람들이 혹시라도 말을 걸면 바짝 긴장하는 내 모습을 종종 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매일 밤 나의 눈시울을 적시는 것은 지금 나는 ‘혼자’라는 정신적 압박이다. 방패막이 되어줄 부모님도 나에게 용기 내라고 말해줄 친구들도 없다는 현실인 것이다.
뭐든지 나의 결정대로 움직이고 행동해야 하며 책임져야 한다. 부모님과의 통화를 마친 후에도, 밥을 먹을 때도 수없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나를 다잡아준 건 나와의 약속이었다. 귀국하기 전날 “나는 이곳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는 말을 하고 돌아가리라는 나와의 약속이 지금까지 나를 지켜줬다. 그래서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내가 살고 있는 연해주가 고려인들의 완전한 터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적인 자원봉사자들로 이곳 연해주를 지켜주었으면 한다.

 비록 ‘한민족문화학교’ 한국어 보조교사로서, 우정마을 청년들과 우수리스크 문화센터의 한글수업 업무가 미세한 떨림으로 시작될지 몰라도 계속적으로 이어져 간다면 커다란 변화를 꿈꾸는 것도 허황되지만은 않은 일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에게 붙은 타이틀이 자원봉사일 뿐 내가 배우고 공부한 것이 더 많다.
부디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 연해주에 관심 갖길 바라면서, 젊은 나의 피가 헛되지 않길 바라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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