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에 있는 국립보육원. 나무로 지은 허름한 교실의 책상 위에 노란 티셔츠 50장과 색종이, 크레파스가 놓였다. “얘들아 들어와.” 한국에서 온 조경(41·공무원)씨와 박지현(24·회사원)씨의 손짓에 50여 명의 보육원생이 까르르 웃으며 모였다.
21일 울란바토르 외곽 초원에서 국립보육원생 2명이 2인 3각 경기를 하고 있다. 뒤편에선 한국인 가족봉사단원들과 보육원 아이들이 응원전을 펼쳤다. [울란바토르=이정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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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디자이너’로 변신한 아이들은 티셔츠에 초원·양떼 모양으로 색종이를 오려 붙였다. 크레파스로 해외 축구 스타들의 얼굴도 그려 넣었다. 신문지를 덮고 다리미로 티셔츠를 누르자 ‘세상에서 하나뿐인’ 옷이 탄생했다.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내 옷이 더 멋있다”고 자랑하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날 깜짝 티셔츠 선물 뒤엔 한국에서 온 14명의 봉사단원이 있었다. 여느 봉사모임과 달리 ‘일곱 가족’으로 이뤄진 봉사단이란 게 특이했다. 봉사단체인 코피온(www.copion.or.kr)의 도움으로 류영숙(49·주부)씨네를 비롯한 14명은 지난 18~22일 보육원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의 부모가 되고, 친구가 돼 줬다. 류씨는 “쳇바퀴 같은 학업과 직장생활에 지쳐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기도 힘들었던 가족 구성원들이 몽골 봉사를 준비하며 마음을 더욱 열게 됐다”고 말했다. 봉사단원들은 짬짬이 시간을 쪼개 모든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한마음이 됐다. 어른이며 아이들 대부분 봉사 경험이 있지만, 가족들이 묶인 건 처음이었다.
가족끼리 뭉치니 몽골 아이들에게도 더욱 따뜻하게 대할 수 있었다. 21일 운동회에선 몽골 아이들과 봉사단이 하나가 돼 초원을 뒹굴었다. 어깨를 걸치고 “빗 차튼(우린 할 수 있다)”을 외쳤다. 아이들이 불고기·떡볶이·잡채를 허겁지겁 삼킬 땐 일곱 가족의 마음도 안쓰러웠다.
보육원을 떠나던 날 아이들은 버스를 수백m 쫓아오며 “가지 말라”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단원들은 아이들이 몸을 씻으려고 수도꼭지 서너 개에 매달리던 모습, 여름인데도 입김이 나는 추운 밤을 얇은 옷으로 버티던 장면을 떠올렸다. “아이들을 계속 가슴에 묻읍시다. 가족처럼 말이에요.”
김정희(46)씨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책을 보내주자”고, 권민성(17)군은 “이곳에 오는 자원봉사자와 접촉해 필요한 물건을 보내자”고 의견을 냈다. 다른 단원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가족 봉사단은 일주일 만에 더욱 똘똘 뭉쳐 있었다. 딸 서현(16·세화여고 1년)양과 함께 온 심동현(49·회사원)씨는 “애를 철부지로만 여기고 매사 군소리만 했으나 몽골 아이들을 위해 나보다 더 열심히 뛰던 딸의 모습에 마음이 찡했다”고 말했다. 몽골 아이들과 보낸 자원봉사 시간은 이들에게 ‘가족의 재발견’이란 큰 선물을 준 것이다.
울란바토르=이정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