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중앙일보
[시론] 자원봉사, 이젠 질적 발전이다
중앙일보가 자원봉사계와 함께 15년째 매년 가을마다 펼쳐온 ‘전국자원봉사대축제’가 올해는 4월 말로 당겨 치러졌다. 이동 첫 해라 참가자 수가 적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기우(杞憂)였다. 예년과 같이 11개 시·도가 공동 주최에 나서고, 10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1주일 동안 전국의 사회복지 시설, 산과 강 등을 찾아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쳤다.
주요 자원봉사 단체들과 행사를 기획하면서 올해의 특별 주제로 삼은 것이 ‘새로운 이웃과의 소통-다문화 자원봉사’였다. 다문화 가정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자원봉사계가 앞장서 그들을 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축제 기간 중 많은 단체·자원봉사자들이 그 주제에 맞춰 봉사활동을 폈음은 물론이다.
그러고 보니 올 봄에는 다문화를 주제로 한 자원봉사계의 이벤트가 유난히 많았다. 이달 중순 서울 청계천과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제2회 BBB 국제친선 청계천 걷기대회’나 ‘제1회 다문화가족사랑 걷기모금대회’ 등이 그것이다.
지지난주 토요일 오전 청계천 행사에선 형형색색의 각국 전통의상을 입은 20여 개국 대사관 직원 등 주한 외국인 200여 명이 3000여 명의 대학생·시민과 함께 청계천을 걸었다. 위스타트· 코피온 등 국내외 아동 지원사업을 펼치는 5개 단체가 준비한 ‘다문화 가족사랑 걷기모금’ 대회에는 대통령 부인 등 무려 1만3000여 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올봄 자원봉사 기관 단체들이 이처럼 다문화를 주제로 다양한 이벤트를 펼치고 있음은 바로 우리나라의 자원봉사계가 이제는 시대를 선도하는 뚜렷한 한 사회 주체로 성장했음을 방증한다. 다문화 포용, 국제친선의 중요성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자 자원봉사계가 앞장서 곧바로 국민 인식의 변화를 위한 선도적 작업을 편 것이다. 충남 태안에 몰려간 100만 명의 자원봉사자들, 또 그들을 인솔한 전국의 자원봉사센터· 단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단순한 개인적 감동과 보람 차원을 넘어 국토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몸으로 증언하는 선구적 역할을 했다.
한국 자원봉사계의 그 같은 역할 수임은 사실 지난 10여 년간 사회 각계각층에 확산된 자원봉사 운동의 눈부신 성장의 결과다. 중앙일보가 캠페인을 시작했던 1994년 7월 초만 해도 10%대 정도였던 성인의 자원봉사 참여율이 지금은 25% 정도에 이른다. 중·고생 청소년들의 활동까지 합치면 국민 전체의 자원봉사 활동 수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전국의 190여 대학들과 기업, 그리고 언론의 관심과 지원도 적지 않다. 전국 248개 지자체에 자원봉사센터가 들어서고, 30여 대기업이 임직원 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자원봉사활동기본법, 자원봉사 국가 5개년 기본계획까지 만들었다. 그 같은 성장과 발전을 바탕으로 한국 자원봉사계는 드디어 올해 세계자원봉사협회(IAVE) 회장까지 배출했다. 이제는 세계 자원봉사 운동의 선도국가까지 된 것이다.
그러나 짧은 기간의 성장 탓인지 문제도 적지 않다. 중·고생들의 비자발적인 봉사활동, 아직도 보수와 대가를 요구하는 많은 사례들, 높은 중도 탈락률,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참여 저조 등이다. 자원봉사는 기본적으로 민간이 주도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정부의 적극적이고 세심한 배려도 필요하다. 국가 5개년 기본계획의 시행 첫 해를 맞았지만 아직도 충분한 예산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봉사단체의 관변화 조짐도 큰 문제다.
민간단체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대한 정부의 인사 개입 논란, 지역 자원봉사센터들에 대한 일부 지자체장의 노골적인 관변화 시도 등은 바람직하지 않고 듣기에도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젠 양적인 성장 못지않게 질적인 과제들을 풀어내야 할 때다. 자원봉사 선진국을 향한 민과 관의 더욱 합심된 노력을 기대해 본다.
이창호 중앙일보 시민사회연구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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